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JG 21 (문단 편집) == 1940년 == [[1940년]]이 되자, 비행단은 지휘관이 바뀌며 JG 21로 편제된다. 전투기는 27대가 남아있었지만 이들은 5월부터 [[서부전선]] 캠페인에 참가했다. 이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[[에반-에마엘 요새]]와 [[마스트리히트]](Maastricht) 지역의 제공권을 지키는 것이었다. 5월 12일에 그루페는 보겔상(Vogelsang) 비행장으로 이동하였다. 그 뒤에는 프랑스 국경을 넘어 세당(Sedan)과 샤를르빌(Charleville)을 모기지로 삼고 프랑스 공군기들을 연이어 격파했다. 5월 16일에 또다시 비행장을 전진시킨 이들은 육군의 기갑부대 진격을 엄호했다. 22일부터 26일까지 캉브레 지역에서 꽤 대규모 공중전이 벌어졌지만, 실전 경험을 쌓고 장비의 질도 앞서는 [[루프트바페]]가 전쟁 준비가 덜 된 프랑스 공군을 압도하고 있었다. 6월 4일에는 상트 데니스(St. Denis)로 옮긴 그루페는 JG 27 휘하에서 풀려났고 당분간 독립 비행단으로 임무를 계속했던 것으로 여겨진다. 6월 중순까지 이들은 [[파리(프랑스)|파리]] 남쪽 교외에서 [[에펠 탑]]이 희미하게 보이는 지척까지 전개했다. 이들은 6월 22일까지 [[프랑스]] 전역에서 임무를 마치고 본국의 [[뮌헨|뮌헨-글라드바흐]]로 돌아갔고 잠시의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. 그루페는 이제 [[연합군]] 전투기라곤 한 대로 날아오지 않는 [[네덜란드]] 해안 지역에 영공 방어라는 2선 임무를 맡으며 한가한 나날을 보냈다. 이때까지 제 I 비행단은 45회의 격추를 달성했고, 3명의 조종사를 잃었다. 그중 1명은 포로로 잡혔고 또 하나는 중상을 입어 공중 근무를 떠나야만 했다. 또한 이들은 10대의 메서슈밋 전투기를 손실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